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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업무,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으로 해내죠"
전문지식 쌓아 중소기업 성장 돕는 금융인 되고파

20170516.jpg

무에타이 선수로 맹활약하다가 은행원으로 변신한 30대 청년이 있다. 2015년 하반기 NH농협은행 5급 공채에 합격해 2016년 2월부터 금융맨이 된 서용빈 농협은행 경상대지점 계장(30) 얘기다. 격투기선수라는 선입견 탓에 거친 인상에 딱딱한 말투의 소유자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서 계장은 온화한 얼굴 빛에 부드러운 목소리를 지닌 친절한 금융인이었다.


"2003년 고1 때 TV에서 케이원(K-1) 경기를 보다가 킥복싱 선수들의 격투 모습에 반해 무에타이를 시작했습니다. 무에타이 챔피언 출신인 태국 트레이너에게 무에타이의 주요 기술인 클린치를 배우면서 실력이 늘었습니다. 2004년 10월 국제킥복싱연맹 주최 국내 골든글로브 대회에 출전한 후 최고의 무에타이 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했죠."

무에타이 선수에게 체중관리는 아주 중요하다. 경기 당일 오전 선수의 체중을 측정해 체급 기준을 초과하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서다. 그는 시합일엔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경기에 나설 만큼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였다. 초코우유가 너무 먹고 싶어서 샀다가 먹지 못했던 적도 있을 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그는 2005년 국내 '신인왕전' 우승을 시작으로 이후 출전 경기마다 승리하며 그 해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는 학업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중학생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 자발적으로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고3 때 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바꾸면서 학업에도 집중해 2006년 경상대 도시공학과에 입학했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그에게 제동이 걸린 것은 2006년 3월 태국 세계선수권 대회였다. 그는 53.5kg급 경기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지만 8강전에서 코뼈가 부러지는 등 큰 부상을 입었다.

"링 위에 올라가면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니까 맞아도 고통도 별로 못 느낍니다. 시합 당일 아침 체중을 쟀는데 53.5kg을 초과해서 한 끼도 못 먹고 시합에 나갔더니 기운이 없었어요. 피가 철철 났지만 아프다는 느낌보다 국내에서 늘 이기다가 지니까 창피한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그는 그 대회 이후 전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07년 운동을 그만 두고 학업에 매진해 2010년 대학을 졸업하고 학군단(ROTC)으로 입대했다. 운동을 그만 둔 것은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해도 상금이 많지 않고, 코치로 활동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등 경제적 요인 탓이 컸다. 제대 후 2013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무에타이 강사로 활동했다. 많이 벌 때는 일주일에 100만원도 벌었지만 무에타이가 비인기 스포츠라서 안정적인 수익을 얻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2014년 7월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한 중소기업에서 영업사원으로 6개월 정도 일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농협은행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준비해 1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2015년 하반기 신입 공채에서 합격했다.

"삼성직무적성검사 관련 책 등으로 필기시험을 대비했고 영국 BBC방송, 신문 등으로 시사이슈를 공부했습니다. 금융용어도 열심히 익혔지요."

서 계장은 운동선수 경험이 은행원 업무에 체력적·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카드·외환업무와 개인신용대출 업무 등을 맡고 있는데 지난해 11월부터 올 3월까지 경상대 학생들에게 학생증 5000여 장을 발급하는 업무로 주말에도 자발적으로 일할 정도로 업무량이 많았지만 체력이 좋아 끄떡없었습니다. 운동할 때 자신을 한계치까지 몰아가며 정신 관리를 한 덕분인지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고객에게도 미소로 대응할 수 있네요."

서 계장이 꿈꾸는 제2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을 대표하는 무에타이 선수는 꿈이었고, 농협은행원은 목표였습니다. 둘 다 이뤘으니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려고 합니다. 운동선수는 언제라도 시합이 잡히면 바로 출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은행원도 마찬가지로 언제 어떤 업무라도 맡을 수 있도록 전문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서 중소기업 성장을 돕는 금융인이 되고 싶습니다."

매일경제 201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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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26.jpg


제주중앙고등학교(교장 채칠성)에 재학 중인 3학년 학생들이 은행에 잇따라 취업했다. 학교 '취업동아리' 맞춤형 운영으로 은행 취업의 문 열었다는 평가다. 

김지혜 학생은 지난 19일에 발표한 우리은행에, 전성준 학생도 지난 21일 발표한 한국은행 2017년 반사무직원(C3) 채용에서 각각 최종 합격했다.

김지혜 양은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 엄마의 꿈이 은행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은행원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은행원의 꿈을 키우기 위해 우리학교 금융비즈니스과에 입학해 자격증 취득 등 은행원이 되기 위한 노력에 힘을 기울여 왔다. 

자격증은 ITQ한글 및 엑셀, 전산회계 1,2급, 전산회계운용사 2급, MOS-엑셀, 엑세스, 워드 등 8개를 취득했다.

여러 가지 교육활동에도 참여했는데,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로 구성된 '창조인재반'에서 자신의 실력을 꾸준히 쌓았으며, '파이넨스 동아리'에 가입해 취업동아리별 특성에 맞는 취업아카데미와 면접특강, 취업캠프에 꾸준히 참여했다.

취업 특강 시간을 통해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혜 양은 "원하는 취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취업동아리에 가입하여 자신이 희망하는 기업체에 취업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 및 인성, 면접, 자기소개서 작성 방법 등을 학습한다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성준 학생은 특성화고 채용부문 합격자는 전국에서 7명뿐인데, 당당히 합격했다.

성준 군은 제주중앙고 학생회 취업부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우리학교에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들로 구성된 12개의 취업관련 동아리 부장들과 함께 내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취업아카데미를 통해 전산회계 1,2급, 전산회계운용사 2급, MOS-엑셀, 엑세스, 워드, ITQ-한글 및 엑셀 등 무려 17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면접특강, 취업캠프에도 빠짐없이 참여하며 차곡차곡 준비해온 결과 자신의 원하는 한국은행 일반사무직원(C3)에 합격하는 꿈을 이뤘다.

뉴스제주 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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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701.jpg


저는 신일비즈니스고 3학년에 재학 중인 박한별입니다.


지난 5월4일 높은 경쟁률을 뚫고 국민은행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7월 25일부터 진행되는 신입사원 연수를 기다리고 있구요.


저는 은행 취업을 준비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내신성적이 많이 낮습니다. 그래서 취업과 관련된 자격증 취득과 다양한 교내외활동을 통해 ‘나만의 스토리’ 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3학년이 되면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에 자격증 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에 1학년 때부터 미리 여러 자격증을 공부했습니다.


ITQ 한글, 파워포인트, 엑셀과 워드프로세서 1급, 컴퓨터활용능력 2급, 전산회계 2급, SMAT 서비스경영 자격증 등을 취득했습니다.


또한, 글쓰기를 좋아해 여러 글쓰기 대회에 참가하여 약 18개의 상을 수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상은 ‘독도홍보상’ 이었습니다.


IBK기업은행과 독도사랑회가 주최하였던 ‘나라사랑 독도사랑 글짓기 대회’에 영어부문으로 참가하여 ‘독도홍보상’을 수상하여 학교대표로 ‘IBK 독도탐방단’ 활동을 하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IBK 금융경제캠프’ 에도 학교 대표로 참가하게 되어 기업은행 충주연수원에서 경제 교육을 받았고, 은행텔러의 업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1학년 때부터 경진대회 준비반인 신영반에서 야자를 하며 ‘경기도 상업정보능력 경진대회’ 에 취업진로포트폴리오 분야의 학교 대표로 참가하여 장려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프레젠테이션능력과 비즈니스 매너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저는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활동에 참가하였습니다.


이런 대외적인 다양한 활동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듯 합니다.


어떠한 꿈이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달려 나간다면 이루지 못할 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오르지 않는 내신성적을 탓하며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하지 않고, 은행원의 꿈을 포기했더라면 저는 지금쯤 목표가 없이 그저 방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루지 못할 꿈은 없다!” 라는 말을 스스로 되새기며 은행원이라는 제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달려왔고 마침내 제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KB국민은행에 입행 후 몇 년이 지나더라도 항상 신입의 자세를 잃지 않는 행원이 되겠습니다. 7월 말부터 참가하게 되는 신입행원 연수에서 금융 경제에 대한 지식과 은행 창구 업무에 대해 열심히 배워 제가 맡은 업무를 완벽하게 숙지할 것입니다.


밝은 미소와, 신속하고 정확한 업무처리능력, 친절한 고객응대는 은행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에 더해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는 은행원이 되고 싶습니다.


어린 아이부터 어르신분들까지 저를 찾아주시는, 그리고 KB국민은행을 찾아주시는 모든 고객 분들이 만족하실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드리기 위해 고객분들의 눈높이에 맞춘 서비스를 해드릴 것입니다.


머니위크 201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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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부경찰서는 10일 대구은행 복현지점에서 전화금융사기 피해를 예방한 ‘빠른 창구’ 근무자 이정아 계장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매일신문 201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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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여고생이 보통 학생들이 선택하는 서울대 진학 대신 은행에 입사해 온라인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5일 TBC ‘8뉴스’는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는 우수한 성적임에도 은행에 입사한 여고생 이지민 양의 사연을 보도했다.

올해 대구 경덕여자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 양은 서울대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이었음에도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대신 은행원의 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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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대학을 갔어도 4년 후에 은행원이 될 거였다”며 “굳이 지름길을 두고 왜 돌아서 가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당당하게 소신을 밝혔다.

당시 학교에서 진로 상담을 맡은 조복순 선생님은 대학에 안 가겠다는 이 양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녀의 선택에 부모님은 반대보다는 이 양을 믿고 존중해줬다.

이 양은 “내 결정이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남들이 한다고 해서 그것 역시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다”며 “자기주관과 생각이 뚜렷하다면 그 길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201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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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만한 고객관리 전문가가 없다. 아무런 도전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게 실패다. / 늘푸른꿈 백태흠 대표


3244명. 2010년 11월 국민은행에서 희망퇴직한 은행원의 수다. 국민은행이 5년 만에 실시했던 이 희망퇴직은 규모 면에서 금융권 사상 최대여서 관심을 끌었다. 주로 만 55세 안팎의 지점장급 직원들이 32개월치 월급을 희망퇴직 지원금으로 받고 은행을 떠났다. 그 후로 6년. 당시 퇴직한 지점장 중 4명을 만나 희망퇴직 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6년 전만 해도 은행의 희망퇴직이 뉴스거리였지만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상시화되는 추세다. 희망퇴직 이후의 삶을 개척한 이들은 현재의 위치는 각자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깨달은 것을 은행에 다닐 때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친환경 비료 판매 대리점주 변신 백태흠씨: ‘늘푸른꿈 대표’. 백태흠(58) 전 지점장이 건넨 명함 속 직함은 간결했다. 늘푸른꿈은 그가 운영하는 비료판매 대리점이다. 그가 비료영업에 뛰어든 지도 만 5년이 됐다. 퇴직한 그에게 비료 사업을 제안한 사람은 지점장 시절 알고 지낸 거래처 사장님이었다. “일본의 친환경 비료가 있는데 일본에선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 ‘은행 시절 거래해온 골프장에 영업을 하면 되겠구나’라고 쉽게 생각했다. 2011년 5월 친환경비료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지인의 도움으로 골프장에 어렵지 않게 납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번 비료를 쓴 골프장에서 다시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 왜 그런지 이유는 뒤늦게 알았다. 리베이트 관행을 그가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료는 문외한이지만 고객관리는 전문가

영업의 방향을 틀어서 골프장이 아닌 농가에 비료를 팔기로 했다. 그러나 그가 농사에 문외한인데다, 비료 업계의 경쟁은 치열했다. 비료를 팔려면 작물을 보면서 병이 있는지, 어떤 성분이 부족한지를 코치해 줘야 하는데 그런 지식이 있을 리 없었다. 농가를 찾아다니며 제품을 설명해도 받아주는 고객이 없었다. 다른 업자들과 똑같은 방식의 영업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승부하기로 했다. 고객의 마음을 얻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은행원이 전문 지식이나 기술이 없어서 은퇴 후 힘들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기술이 있는데 스스로 모르고 넘어가는 거에요. 30년 넘게 은행에서 일하면서 해온 게 고객관리잖아요. 그 기법은 다른 비료업자는 갖지 못한 나의 기술이죠. 내가 제품 설명은 못해도 고객관리는 전문가이니까요.”

다른 비료업자들은 마케팅을 위해 사은품용 장갑을 돌렸다. 어떤 업자는 비아그라를 구해서 돌리기도 했다. 백씨는 기존의 틀을 깨고 농가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찾아서 사은품으로 제공했다. 겨울엔 손이 시려우니 핫팩을, 봄엔 볕이 뜨거우니 자외선 차단 마스크를 줬다. 작목반장의 생일을 일일이 챙기고 그 부인들에겐 마사지팩을 선물했다. ‘늘푸른꿈’이 적힌 조끼를 맞춰서 작목반에 돌리기도 했다. 은행에서 영업할 때 고객 자녀의 취미가 뭔지까지 알아보던 경험을 살려 비료판매에 적용했다. 한 딸기연구회 워크숍엔 직접 가서 고기를 구워 주고 함께 술을 마셨다. “사람들이 놀라더라고요. 보통 워크숍 한다고 하면 다른 비료 업체는 돈이나 맥주를 보내줄 뿐 직원이 직접 오진 않는대요. 직접 가서 고기를 구우니까 고객들이 ‘우리 농가에 한번 와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3년쯤 하니까 ‘저 사람은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좋은 제품을 파는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형제처럼 친해진 작목 반장들이 주변에 늘푸른꿈 제품을 선전해주는 고객이 됐다. 작목반장 중엔 알아서 물건을 팔고 수금까지 해주는 사람도 있다. 보증금 없이 사무실을 빌려준 것도 작목반장이었다.

그는 희망퇴직을 앞둔 은행 후배들에게 “도전을 하지 않는 게 실패”라고 조언한다. 세상엔 얼마든지 도전할 만한 일이 있고 은행원의 강점을 발휘하면 얼마든지 차별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제조 업체에 있던 사람이라고 해서 은퇴하고 모두가 그 기술을 발휘해서 일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은행원이 은행을 나오면 할 게 없다고 하는데 사실 은행원은 쌓아둔 대인관계가 있으니 오히려 조건이 좋은 편이죠. 농사를 짓든지 인터넷쇼핑몰을 하든지, 고객관리 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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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자기 사업을 한다는 게 만만치 않다. 은행에 다닐 때 저축을 늘려서 노후 준비 하라. / 삼화카페플라워 정건삼 사장


꽃집 사장님으로 변신한 정건삼씨: 일산 덕이동에 있는 비닐하우스 꽃집 ‘삼화카페플라워’. 봄꽃이 만발한 이곳은 정건삼(60) 전 지점장이 부인 유미희(57)씨와 운영하는 화원이다. 정전 지점장은 이제 어느덧 3년차 꽃집 사장님이다. 그가 퇴직할 때부터 꽃가게 주인이 되려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부부가 그렸던 은퇴 이후의 삶은 귀농이었다. 퇴직 전부터 귀농아카데미를 다니며 교육을 착실히 받았다. 2011년 충남 청양에 땅을 사서 이주했다. 그곳에서도 농업기술센터에 열심히 다니며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취미로 하던 주말 농장과 본업으로 하는 농사일은 차원이 달랐다. 주말농장은 일하다 힘들면 그만둘 수 있지만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은 그렇지가 않았다. 힘들었다. 무엇보다 건강이 문제였다. 허리 디스크 때문에 병원에 갔더니 무조건 쉬라고 했다. 1년 만에 정리하고 다시 원래 살던 일산으로 올라왔다.

오래 계획하고 준비했던 귀농이 무산되자 할 일이 없었다. 한동안 집에서 쉬었다. 어느 날 아내 유씨가 먼저 제안했다. “우리 같이 꽃집을 해볼까?” 은행 다닐 때 대출 받아 사둔 주말농장 자리 500평(약 1700㎡)에 화원을 내자는 이야기였다.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 해볼 만하겠다 싶었다. 꽃에 대해 공부하고 비닐하우스를 지으며 준비한 지 1년 만인 2014년 2월 지금의 삼화카페플라워를 열었다.

조직에서 더욱 성장하려고 노력하라

초보 꽃집 사장님이다 보니 처음엔 헤매는 일도 많았다. 은행에서 일하면서 몸에 밴 습관 때문에 꼼꼼하게 일하는 게 어떤 면에선 단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은행원다운 서비스에 만족감을 느끼는 고객도 있었다. “꽃을 포장할 때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하면 그걸 마음에 들어 하는 손님이 있더라고요. 은행에서 배웠죠,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런 게 좋은 분들은 단골이 됐지요. 지난 겨울엔 단골 손님이 ‘지점장님 추우실 텐데 이거 입고 일하시라’면서 옷도 사주셨어요.”

화원 운영은 은행 업무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꽃은 예쁘지만 꽃집 운영은 결국 몸을 써야 하는 ‘노동일’이다. 무거운 화분 배달까지 정 전 지점장이 직접 하다 보니 힘에 부칠 때도 많다. “화원을 하면서 세상의 일이 두 가지로 나눠진다는 사실을 알았죠. 시스템의 움직임으로 돈을 받는 경우가 있고, 노동의 대가로 받는 급여가 있어요. 은행처럼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건몸이 편하고 수입도 좋죠. 시스템만 잘 돌아가면 수익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고요. 노동은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벌 수 있는 돈이 제한적입니다. 건축현장에서 노동하는 사람은 하루 일당 이상을 벌 수 없잖아요. 하루에 25시간을 쓸 순 없으니까. 그걸 일찍 알았으면 도움이 됐을 텐데….”

만약 은행원 시절에 이런 깨우침을 미리 얻었다면 뭐가 달랐을까. 그는 “내가 은행 중간간부일 때 이를 알았다면 더 열심히 일해서 은행 조직에서 성장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시스템 안에서 오래 머물기 위해 좀 더 노력했을 거란 뜻이다. 또 “은행에 있을 때 덜 쓰고 저축해서 은퇴 후 받는 연금액을 늘려놨다면 화원은 취미생활 정도로 삼아서 크게 힘들이지 않고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다행히 정씨 부부의 화원은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임대료가 없다 보니 비싸게 팔 이유가 없어 가격 경쟁력이 있는데다 충성고객도 늘었다. 지난해까지는 간신히 유지비를 충당하는 정도였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소득이 생겼다. 정씨는 “새로운 일을 하는 게 재미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후배들은 좀더 편한 일을 찾고, 혹시 화원을 하더라도 취미로만 하길 권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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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1~2년은 세상 경험을 쌓아라. 그런 다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 / 한국주택E&C 이상용 대표이사


인력파견 업체 사장님 된 이상용씨: 서울 구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이상용(62) 전 지점장은 ‘한국주택E&C 대표이사’라는 직함의 명함을 건넸다. 그가 2013년 설립한 건물관리·인력파견 업체로 8명의 직원이 일한다. 공장과 콜센터, 은행 등 20여 곳에 100명 정도 인력을 파견하고 있다.

사업이 이 정도 기반을 잡기까지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애초 그가 퇴직 전 구상한 사업은 경영컨설팅. 전문기관에서 4주에 걸쳐 관련 교육도 받았다. 하지만 막상 사업을 구체화하려고 알아보니 시장 상황은 예상과 딴판이었다. 영세한 중소기업은 경영컨설팅을 받으려는 수요 자체가 거의 없었다. 먹고 살 수가 없겠다 싶어서 계획을 접었다. 그 후 찾은 분야가 인력파견이었다. 지인 몇 사람과 회사를 설립했고, 150명을 파견하는 큰 계약도 따냈다. 그런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계약했던 한강 새빛둥둥 섬 운영 업체가 공사기간이 연장되면서 결국 부도가 났다. 사무실 운영 등에 쏟았던 돈을 날리고 말았다.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낯선 일에 섣불리 뛰어들다간 큰 코 다쳐

예상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초초해졌다. 생소한 분야인 건설인력 업체에 뛰어들었다. 공사현장에서 막노동하는 인력을 공급하는 일이었다. 매일 일당을 선지급하려면 현금이 필요했다. 살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왕창 받았다. 45일 후 건설사에 청구해 받아서 메워야 하는 돈이었다. 순탄하게 사업이 굴러간다 싶었는데 일이 터졌다. 직원 한 명이 건설사가 지급한 일당 2억 원을 가지고 잠적해버렸다. 사업 경험이 없는 그가 직원을 믿고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이었다. 3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그 직원은 찾지 못했다. 그 일을 수습하느라 동분서주하면서 그가 깨달은 점은 이거다. “자기 돈을 넣는 투자는 하면 안 된다. 자기 몸으로 뛰는 일을 해야 한다.” 목돈이 있다는 자신감에 섣불리 건설인력업에 뛰어든 게 무리수였다.

그는 다시 인력파견업으로 돌아왔다. 구직자를 찾아 매칭시키고 수수료를 받는 사업이기 때문에 큰 돈이 들어가지 않았다. 은행원 시절 구축한 인맥으로 건물주 등을 고객으로 모셨다. 업계의 경쟁이 심하지만 열심히 영업을 뛰는 만큼 성과가 있었다. 그는 “사업을 해보니 구멍가게 사장도 다시 보게 된다. 아무리 작은 구멍가게지만 월세를 내고 직원 월급도 주려면 얼마나 여러 가지 궁리를 해야겠는가”라고 말한다. 그는 “사업을 하려면 남의 밑에서 1~2년이라도 일을 배운 뒤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자신도 과거에 친척형님이 하는 지방의 인력파견 업체에 일을 배우러 갔다가 ‘이런 조그마한 업체에선 배울 게 없겠다’는 생각에 그만뒀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워서 준비했더라면 더 나았겠다 싶다. “한두 달 놀다 보면 초조해져서 경험 없는 일에 섣불리 뛰어드는데, 그러면 결국 실패합니다.”

특히 은행원들은 더 실패할 위험이 크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은행원은 온실 속 고운 꽃이에요. 은행이란 보호막이 벗겨지면 강한 햇볕과 비바람에 시달리고, 벌레가 잡아먹으려고 달려들어요. 퇴직 후 무엇을 하느냐는 선택에 자신의 남은 20~30년 인생이 달려있는데도, 달콤한 말에 현혹돼 넘어가기 쉽지요. 투기로는 절대 돈 못 벌어요.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는 수밖에 없어요.”

커플매니저로 전성기 유선재씨: “난 지금이 전성기에요. 은행다닐 때보다 더 행복해.” 지난 4월 8일 만난 유선재(62·여) 전 국민은행 지점장은 행복이란 단어를 많이 썼다. 5년 전인 2011년 2월, 그는 기자와 인터뷰를 했었다. 희망퇴직 후 결혼정보업체 닥스클럽 이사로 변신한 직후였다. 그때 그는 “밑바닥부터 하라면 할 수 있다”는 각오가 대단했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5년 만에 다시 만난 그는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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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조금만 내려 놓으면 은퇴 이후에 얼마든지 재밌게 살 수 있다. / 닥스클럽 커플매니저 유선재


그가 커플매니저에 도전하게 된 건 우연히 본 억대 연봉 커플매니저의 인터뷰 기사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빛나는 직업’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고객의 중요한 선택을 도와준다는 면에서는 은행원과 비슷한 직업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겪은 커플매니저란 직업은 애초 생각과 비슷한 점도, 다른 점도 있었다. “커플매니저는 은행원이 잘 할 수 있는 직업인 게 맞았어요. 연륜이 필요한 직업이기도 하고요. 다만 정형화된 인재들만 모여있는 은행에서 일하다가 여러 성향의 매니저들과 일하려니 잘 안 맞더라고요.” 

그는 풀타임제의 커플매니저로 일하던 닥스클럽에서 1년 만에 퇴사했다. 어렵게 재취업한 회사를 그만 둔 가장 큰 이유는 좀 더 자유롭고 싶어서였다. 그는 “처음 밖에 나왔을 땐 계속 은행에서처럼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매일 출퇴근하면서 소속에 매여 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곳에서 커플매니저 관리자 역할로 오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지금은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만 사무실로 출근하며 커플매니저 일을 하고 있다. 다른 커플매니저처럼 졸업앨범이나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을 가지고 연락하는 영업은 하지 않는다. 알음알음 소개로 전화를 걸어오는 고객만 관리한다. 그는 “결혼정보 업체가 자신의 정보를 관리하는 걸 싫어하는 부유층 고객들이 주로 찾는다”고 했다. 은행 지점장 출신이라는 경력이 이러한 고객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요인이다. 그의 고객들은 자녀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전문 커플매니저가 아닌 ‘잘 아는 지점장’이 소개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 나와도 괜찮아 … 할 일 많고 재미있어”

커플매니저 일이 은행에서 일할 때보다 좋은 점도 있다. “은행에선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고객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어요. 지금은 의뢰하는 사람의 됨됨이가 별로다 싶으면 ‘소개가 힘들 것 같습니다’라고 거절해요. 내 고객의 자녀를 그런 집에 보내고 싶지 않거든요. 조직에 속한 게 아니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얼마든지 ‘아니면 말고’가 가능하지요.” 주간·월간·상반기·하반기 목표에 맞춰 시간에 쫓기며 지내야 했던 은행 지점장 시절과 달리 누가 재촉하지도 않는다. 결혼이 밀어붙인다고 되는 일도 아니어서다.

그는 “조금만 내려놓으면 얼마든지 작은 행복에 만족하면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를 위해서 살고자 하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게 그가 은퇴 후 찾은 행복론이다. 그가 희망하는 게 있다면 봉사하는 것, 그리고 65세가 되기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번 걸어보는 것이다. 커플매니저 일은 70세까지 하겠다는 계획이다. “나와도 괜찮아. 할 일 많고 재미있어. 너무 걱정하지마.”


중앙일보 201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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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8.jpg

경남 양산경찰서가 보이스피싱 피해를 방지한 동양산농협 신도시지점 변광섭 지점장과 직원 3명에 대해 경찰서장 감사장을 전달했다고 28일 밝혔다.

변 지점장 등은 지난 19일 오후 12시50분 A씨 가 은행에서 정기예금 3000만원을 중도해지하고 외환은행계좌로 송금해달라는 말을 듣고 확인한 결과 "조카가 급히 돈이 필요해 빌려줘야 한다"며 돈을 송금시키고 나머지 예금도 송금할 목적으로 통장을 들고 급히 은행을 떠났다.

이날 A씨는 서울검찰청 수사관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 사기범으로부터 "은행직원들이 예금을 다 빼돌리고 있으니 급히 은행으로 가서 안전한 계좌로 돈을 모두 송금하라"는 전화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직원들은 범인들의 계좌에서 피해금이 계속 인출되는 것을 확인했으며 범행계좌는 지급 정지됐다.

A씨는 계속 돈을 송금하기 위해 은행을 떠난 상태에서 변 지점장과 직원들은 돈을 송금한 계좌가 범행계좌였다는 사실을 통보받고 추가피해를 막기 위해 A씨를 찾아 집과 인근은행들을 탐문하던 중 현금 3000만원을 들고 은행으로 가고있던 A씨를 발견,설득끝에 경찰에 신고하고 피해구제를 신청했다.

김주수 경찰서장은 "은행원들의 신속하고 발빠른 대처가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며 은행직원들의 공로를 치하했다.

아시아뉴스통신 201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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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청경생활 끝에 은행원 전환
8년의 은행원 생활 끝에 부지점장 승진
6개월 만에 지점장으로 발령

20130721.jpg 청경 출신으로 은행권 첫 지점장에 오른 정연웅 우리은행 일산가좌지점장이 밟아온 인생여정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19일 정기인사에서 수신서비스센터 인천지역팀장 정씨를 지점장으로 발탁했다. 은행권에서 청경 출신이 지점장으로 발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은행은 "일에 대한 열정과 탁월한 영업실적 등을 고려해 정씨를 지점장으로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청경시절 성실한 근무자세로 일해온 그는 은행에 들어와서도 2006년ㆍ2007년 연속 우수직원으로 은행장 표창을 받았고 2008년ㆍ2011년에도 우수직원으로 지속적으로 선정됐다. 인천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관계자는 "당시 정연웅 차장이 200여 명의 장애인들을 일일이 직접 찾아다니며 통장 개설을 도와줬다"고 말했다.

인생은 늘 도전해야 한다며 50대 나이에 철인3종 경기에 도전해 13시간대 완주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정 신임 지점장은 "과분하게 칭찬을 받다보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201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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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8.jpg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2013년 신한은행 고졸공채에 당당히 최종 합격해 자신의 꿈을 이룬 학생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인 정고운(구남보건고 3학년) 양은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단둘이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어렵게 생활했다. 하지만, 정 양의 얼굴엔 늘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 그 비결은 바로 긍정의 힘이라고 했다.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 긍정이 행복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상대방을 더 배려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중학교 때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은행원에 대한 꿈이 있어 일반고 대신 특성화고인 구남보건고에 입학했다. 특성화고 입학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취업반에 들어가 본격적인 취업준비에 매진하면서, 회계 및 정보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교내 경진대회 및 동아리 활동에 적극 참가하면서, 창의성을 키웠다. 

교내 생활정책 아이디어대회에서 미혼모 카페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로 1위에 올랐다. 받은 상금으로 쌀을 구입해 홀몸노인에게 드렸다. 정 양도 취업준비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밤늦게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목이 쉬기도 하고,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 운 적도 많았지만, 계속해서 도전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정 양은 “무작정 대학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긍정의 힘을 믿고서 끈기 있게 끝까지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19년간 몸에 밴 나쁜 습관들을 바로잡아 주신 선생님들께 합격의 영광을 돌린다”고 했다.

김성철 산학협력부장은 “면접과 인성지도로 매일 야근을 하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가는 것을 보면 매우 기쁘다”며 “앞으로도 고졸취업이 더욱더 확대되길 바란다”고 했다.

매일신문 201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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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6.jpg "만점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니까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이론과 실력을 겸비한 금융인으로 쑥쑥 성장하고 싶어요."

매년 20만명의 금융인에게 직무 교육을 실시하는 한국금융연수원에서 '1등왕'으로 손 꼽히는 은행원이 있다. 주인공은 KB국민은행 기업여신심사부에서 심사역으로 일하고 있는 박알뜰 과장. 박 과장은 2007년 KB국민은행 전체 5000명 직원 실무 평가에서 1등을 하는 등 금융연수원의 각종 연수 과목에서 10여 차례 넘게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여신심사' '여신법률' '신용분석' 등 집합 연수 과목뿐 아니라 2000명의 시중 은행원들이 참가하는 통신연수에서도 1등을 해 연수원 내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포상으로 중국과 일본 등 해외여행도 수차례 다녀왔다. 1998년 장기신용은행으로 입사한 박 과장은 서초동ㆍ송파 지점을 거쳐 지난해 과장으로 승진해 현재 기업여신심사부에서 제약 담당 심사역을 맡고 있다.

박 과장은 "대리 시절 바쁜 와중에도 업무가 끝나면 커피전문점에 가서 밤 12시까지 공부했다"며 "교재 한 권을 다섯 번 이상 읽었다"고 말했다. 좋은 연수 성적 덕분에 동기들에 비해 승진도 빨랐다.

매일경제 201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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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2.jpg충북 진천에 출장 중이었는데 갑자기 지점장님께서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제가 정규직으로 채용된다는 거예요. 상상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 거죠.”

기업은행이 11일 발표한 정기 인사에서 네팔 출신 박로이 씨가 외국인 출신 최초의 국내 은행 정규직 직원이 됐다. 박씨는 지난해 4월 다문화가정 결혼 이주민 특별채용으로 입행한 뒤 1년 3개월 만에 정규직으로 임용됐다. 당시 뽑힌 12명 중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기업은행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와 글로벌 사업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만난 박씨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능숙한 한국어 실력을 뽐냈다. 모국어인 네팔어와 한국어에 더해 영어, 파키스탄어, 인도어까지 5개국 말을 구사하는 그는 명문 인도 델리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그가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었던 건 단지 ‘스펙’이 아닌 ‘열정’ 덕분이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자리한 서울 서여의도지점에서 외국인 고객 대상 업무를 맡은 그는 지점에만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평일에는 중기중앙회 연수원에서 연수받는 외국인을 찾아 화성, 안성, 양평, 진천 등지를 돌았다. 주말에는 네팔인이 많이 모이는 동대문으로 향했다. 김포, 화성 등 공장 밀집지역도 수시로 찾았다. 상품 안내 책자를 10개 국어로 만들어서 돌리기도 했다. 통장, 신용카드, 스마트폰 뱅킹 등 그의 손으로 1년간 개설한 계좌만 3만개에 이른다. 이 일로 그는 조준희 기업은행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금융 거래 경험이 없어 계좌, 송금, 이체 등을 잘 몰라요. 금융 정보를 알려준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설명했더니 저절로 실적이 쑥쑥 오르더군요.”

그는 대학 동창이 일하고 있는 네팔인베스트먼트은행과 환거래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한국에서 고향으로 월급을 보내는 외국인들의 수수료를 낮춰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다. 

박씨는 대학 시절 인도로 배낭여행 온 한국인 여성을 만나 2004년 결혼과 함께 입국했다. 본명인 다와널브 셀파 대신 아내의 성(姓)과 국내학원 영어강사 때 썼던 예명을 딴 박로이라는 이름으로 2007년 귀화했다. 그동안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종합안내센터, 네팔 대사관에서 일했다.

박씨는 “한국도 그렇지만 인도와 네팔에서 은행원은 선망의 대상”이라면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니 금융을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달 말 연수가 끝나면 다른 은행원처럼 일반 창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비쳤다. 수신, 여신, 외환 등 기본기를 다지고 싶어서다. “한국 중소기업의 인도 진출이 늘고 있어요. 언젠가 기업은행 인도 사무소에 가서 한국 기업이 정착하는 데 돕고 싶습니다.” 

서울신문 201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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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수익보다 30년 뒤를 보고 창업하세요”

30년간 은행에서 근무한 민찬기 씨. IMF 외환위기 이후 경영실적이 나빠진 은행의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2003년 일자리를 잃었다. 이후 재취업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 직장생활 동안 취미로 즐긴 20년 운동 경력을 살려 2010년 ‘민찬기 운동처방연구소’를 1인 창업했다. 그는 현재 일반인을 대상으로 운동법을 지도하고 건강관리 강연을 진행하며 인생 2막을 활기차게 보내고 있다.

2013061201.jpg

아내는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당신이 왜….” 2003년 여름, IMF 외환위기 여파로 30여 년간 일했던 은행에서 구조조정을 당한 남편 민찬기 씨가 힘없이 말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어. 직장 내 분위기와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 그럴 리가 없었다. 자금운용 업무를 담당하며 능력 있고 인정받는 남편이었던 만큼 회사 상황이 어려워도 끄떡없을 것처럼 보였다.
뜻하지 않던 퇴직은 남편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살면서 위기를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심각한 생활고가 시작됐다. 중·고교에 다니던 두 자녀의 학원 수강을 중단시켜야만 했고 후두암을 앓고 있던 아버지에게 치료비조차 드릴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후 대책은 무슨…. 사치이지.’ 게다가 나이 많은 실직자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막막했다.
집에 돈 버는 사람이 없다는 것, 경제적으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게 해준 일터가 없어졌다는 공허함이 함께 다가왔다. 가장인 그에겐 하루하루가 고통의 나날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민 씨는 취업 전선에 다시 뛰어들었다. 그때 그는 단순한 취미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재취업 미련 접다
민찬기 씨는 그동안의 경력을 토대로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여러 번 퇴짜를 맞았다. 일자리 신문,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면 연락이 오는 곳은 주로 정수기나 전자제품 같은 제품 판매나 다단계 판매, 보험 영업 혹은 도산 위기 직전의 중소기업이었다.
자기 회사에 자금담당 상무이사로 자리를 마련해 줄 테니 운영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친구도 있었다. ‘친구마저 내 퇴직금을 노리고 나를 이용하려는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도 번번이 좌절을 맛봤다. 물탱크 제조회사에서는 운전, 서류 준비, 공사도면 및 시방 견적, 물품 납품 준비, 납품 시공, 공사 완료 후 준공 검사, 대금 청구 등 많은 일을 혼자 도맡아 했으나 경제적으로는 보탬이 되질 않아 그만뒀다.
아스팔트 포장업체에 들어가 몇 년간 영업도 해 봤지만 회사가 다른 기업에 팔리면서 다시 실직자가 됐다. “일자리를 구해보려 했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고 은행원 경력으로는 경쟁력이 없었어요. 제가 마치 팔리지 않는 재고 상품과 같았죠. 여러 곳에서 재취업 연락이 와도 결국 전자제품 판매 영업 및 보험 영업뿐이었어요.”
생각에 작게나마 변화가 생긴 건 2009년의 어느 날이었다. 이쯤 되면 현실을 인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재취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자고 마음먹었다. 인생 100세 시대가 코앞에 와 있지 않은가. “앞으로 고령화 시대를 살아나가려면 지금 당장의 수입에 연연하지 않고 20~30년 후를 내다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취업시장에서 여러 번 고배를 마시면서 지쳐가던 중에 처음으로 진정 희망을 갖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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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살려 창업 도전
지난 30년간 은행에서 근무하며 키워 온 취미는 운동이었다. 은행 업무가 주로 앉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담배와 술을 끊는 등 건강한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피트니스 원리, 역학, 물리 등을 생활 속에서 관찰하고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헬스 관련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운동 경력 20년. 그는 트레이너 못지않은 베테랑 운동 전문가가 됐다.
실직 후 다양한 분야의 재취업을 시도해봤지만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운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그는 고령화 시대에 경제활동을 하려면 건강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자신만의 특화된 장점을 살려 창업한다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마침 은행에 다니면서 따뒀던 운동처방사 자격증이 생각났어요. 수중에 돈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만의 경쟁력을 살릴 수 있는 ‘1인 창조기업’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죠.”
한국무역협회가 운영하는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소상공인진흥원의 시니어 창업 지원기관인 ‘시니어 비즈플라자’를 알게 된 것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이곳에서 창업 관련 교육과 멘토링 서비스, 시설, 경영 및 회계자문 등의 지원을 받아 전문 컨설턴트가 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나갔다.
창업 아이템은 고민할 것도 없었다. 운동에 관한 것. 그동안 틈틈이 연구해 온  ‘운동 각’을 활용해 운동처방을 해보기로 했다. 최대한 차별화해서.

운동처방으로 승부
2013061203.jpg 지식을 파는 사업이므로 체계적인 이론 정립이 필요했다. 일반적으로 운동처방이라고 하면 부상 후의 재활치료를 떠올리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병이 발생하기 전의 예방 차원에서 실시돼야 하는 것이 운동처방이며 그의 사업도 여기서 출발한다.
“(몸의) 움직임 즉, 행동의 구조가 올바르지 못하면 신체에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움직임 스타일에 따른 알맞은 기울기의 운동, 이를 ‘운동 각’이라고 정의했어요. 운동 각에 의한 영향을 잘 활용함으로써 몸 안의 여러 장기를 운동시킬 수 있고 불편하거나 약한 부위에 개선 효과를 충분히 줄 수 있는 거죠.”
그는 ‘멘털 피트니스’라는 개념을 도입, 정신까지 포함해 예방적 차원에서 개개인의 신체 스타일을 감안한 운동법을 고안했다. 그리고 자신이 구상한 내용을 토대로 힐링 숙면, 성공적 재취업과 창업을 위한 운동처방과 건강관리, 시니어를 위한 운동처방과 건강관리, 해피웰 운동처방, 생태적 분석을 통한 운동처방, 운동일지 관리 등 강의 및 컨설팅 콘텐츠를 만들어 나갔다.
운동처방 관리 자료인 생태적 분석 설문지와 운동일지의 저작권 등록, 몸의 균형 각도를 측정하는 운동 각 측정기기의 디자인 등록, 남성용 운동기구인 전립선 마사지용 볼기구 발명과 특허 출원 등은 모두 그의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다.
여기에 ‘1급 운동처방사’뿐 아니라 ‘체형관리지도사’ ‘창업지도사’ ‘전국경제인연합회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리더십 매니지먼트 인터내셔널 EPL과정 수료’ ‘한국체육과학원 스포츠시설업 경영관리자·마케팅·에이전트 과정 수료’ 등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며 공부하고 연구에 매달린 결과, 민 씨의 이력서는 각종 자격과 학력 사항으로 빵빵하게 채워졌다.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시니어 비즈플라자 창업과정 수료 후 준비기간을 거쳐 2010년 12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민찬기 운동처방연구소’를 열었다.
 
국민 ‘건강 도우미’ 역할
2013061204.jpg 그는 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가장 적합한 운동 종류, 방법, 횟수 등을 설명해 준다. 일상생활의 나쁜 습관으로 병이 생기는 것을 방지해 주는 ‘건강 도우미’ 역할을 하는 셈이다. 현재 학교, 사회복지관, 공공기관, 기업 등을 중심으로 건강관리 강연을 하고 있으며 퇴직자들에겐 창업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강연을 통한 재능기부도 꾸준히 하고 있다.
민찬기운동처방연구소의 월평균 매출은 약 200만원. 고수익은 아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베풀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이 크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이 그저 즐겁고 행복하다는 그가 밝힌 한 가지 애로사항은 도서 구입비가 많이 든다는 것이다. 또 사업과 관련한 방대한 콘텐츠와 정보 관리를 혼자 하기엔 좀 버겁단다.
그의 다음 계획은 뭘까. 거창한 장기 계획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다. 다만 한 가지,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흐름’ 같은 것은 있다. 그의 계획은 “토털 원스톱 방식의 체형관리 운동센터를 오픈해 국민 건강에 일조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것”이란다. 특히 운동센터의 프랜차이즈화를 구축, 베이비부머 세대가 저비용 기술형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는 “다른 퇴직자들에게도 가능성 낮은 재취업보다는 창업을 권한다”고 전했다. 재취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몇 년밖에 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다. “20~30년 후를 내다보고 창업에 도전하는 것도 새로운 인생을 여는 한 방법이 될 거예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습’입니다. 자신의 핵심역량을 꼼꼼하게 파악하고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 그게 차별화고 경쟁력이죠. 앞으로도 제 배움의 길은 끝이 없을 겁니다.”
 
50+ 성공노트

자본금
‘1인 창조기업’으로 창업해 비용은 거의 들지 않았음. 대신 운동 관련 공부 및 연구를 위한 도서 구입비가 많이 투입됨.

준비기간 및 과정
다양한 교육기관을 활용해 창업에 필요한 기본 역량을 배우는 것이 필수. 만 40세 이상 퇴직자라면 시니어 비즈플라자(중소기업청 주최·소상공인진흥원 주관)와 같은 정부가 지원 및 운영하는 시니어 창업·취업 지원센터 활용을 권함. 주제별 교육과 세미나, 창업 공간, 창업과 취업  전문가 멘토링, 커뮤니티 활동 공간 및 모임 등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받고 창업 관련 각종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음.
성공노하우
일반 트레이너와 달리 정신까지 포함해 예방적 차원에서 운동을 고안했음. 끊임없는 공부와 연구로 1급 운동처방사 자격증 등 관련 전문 지식과 노하우를 갖추고 운동처방으로 아이템을 특화시켜 차별화를 추구. 자신의 핵심역량을 꼼꼼히 파악한 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차별화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 중장년 창업의 성공 조건임.

이코노믹리뷰 201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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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이 넘어가니 다들 안 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130201.jpg 31일 단행된 외환은행 인사에서 대구 사월역 지점장으로 발탁된 이한희 씨는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은행에 들어온 지 34년 만에 지점장이 됐다. 통상 지점장은 대졸의 경우 입행에서부터 20~25년, 고졸은 23~27년이 걸린다. 여자상업고등학교를 나온 이 지점장은 고졸 잣대로 봐도 지점장 승진이 늦어도 한참 늦었다. 

“함께 입행한 고졸 여행원들이 하나둘 결혼과 함께 은행을 떠나더군요. 남아 있는 동료들은 승진 욕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욕심이 없다기보다는 아예 꿈을 못 꾼 것이지요. 당시만 해도 ‘결혼하면 그만둔다’는 각서를 쓰고 입행했거든요.”

1979년 구미여상을 졸업한 뒤 외환은행 구미점에서 은행원으로 첫발을 디딘 그는 이 지점에서만 21년을 근무했다. 세월이 흘러 남녀고용평등법이 통과되면서 지점장을 꿈꾸기 시작했다. 상고를 나온 그에겐 영어가 취약 과목이었다. 학원을 다니며 공부해 7전8기 끝에 2000년 과장 시험에 합격했다.

이 지점장은 “영업점 (텔러) 창구 뒤에 있는 지점장 책상을 보며 늘 저 자리에 한번 앉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면서 “(이번 승진으로) 나 같은 여성, 특히 상고 졸업자도 끈질기게 노력하면 승진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북지역 여행원들에게 ‘맏언니’로 불린다. 입행에서 지점장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차장에서 지점장은 3년 6개월 만에 됐다. 차장이 되고서 대개 6~8년이 지나야 지점장이 되는 전례에 비춰 보면 ‘파격’이다.

친화력이 강점인 그는 영업실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외환은행 자체 평가에서 성과가 나빴던 대구 만촌역 지점을 금세 1등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그가 외국환과 예금 업무를 맡으면서 만촌역 지점은 반기 기준으로 5등으로 뛰어오른 뒤 2반기 연속 1등을 차지했다. 환전을 하러 찾아온 고객에게 카드와 통장을 개설시켜 장기 고객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 지점장은 “아무리 어려운 고객이 오더라도 예전부터 아는 사람처럼 편안하게 대하면 금방 친해진다”면서 “사람 대하는 일이 천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화선 너머의 목소리가 무척 밝았다.

지난해 이모에게 간을 이식해 줄 정도로 따뜻한 심성의 그는 ‘솔선수범’의 리더가 되겠다고포부를 밝혔다. 지점장의 꿈을 이룬 그에게 또 다른 꿈을 물었다. ‘퀴즈대회 우승’이라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전 항상 불가능한 꿈을 꿔요. 지점장도 모두가 안 될 거라고 했지만 이뤘잖아요. (이번 승진으로)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서울신문 201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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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한 영화 속 장면처럼.."은행 창구서 프러포즈 받았어요"
- "여성 많지만 승진은 어려워..女지점장 나올 때면 자부심"

“은행에 들어오기 전엔 여행칼럼니스트를 꿈꿨어요. 하지만, 은행 일을 하게 되면서 미스코리아 출신 여성 지점장이 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하게 됐습니다. 생각만 해도 설레어요”

전북은행 서울 마포지점에서 근무하는 김유미 씨는 미스코리아 출신이다. 이 은행 특유의 미인 대회 선발자 특별 채용으로 지난 2007년부터 돈 만지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전북은행은 미스 전북과 미스 변산 ‘진’으로 선발된 향토 미인을 정규 은행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20130115.jpg뭔가 특별한 일을 할 거란 기자의 기대와는 달리 미스코리아 출신이라고 해서 다른 은행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금통장 개설, 투자상품 판매, 신용카드 발급, 지점 내 서무 업무 등이 그녀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하는 일. 미인 대회 출신들은 때로 은행 신상품이 나오면 상품 소개 모델로 변신하기도 한다.

김씨는 “처음엔 미스 전북이란 타이틀 때문에 주위 사람이 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보람으로 느끼고 있다”며 “은행업을 하다 보니 재테크에도 능해지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직업의 매력”이라고 전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 창구에서 일에 열중하고 있는 젊은 여성 은행원에게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다가와 장미꽃을 선물하는 그 흔해 빠진 장면이 현실에서도 일어날까? 김씨의 결혼 이야기가 딱 그렇다.

“어느 날이었어요. 시차를 두고 장미꽃이 한 송이씩 창구로 날아들었습니다. 지점 동료가 누가 널 좋아하는 것 같다며 괜히 바람을 넣고 있었지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그때 결혼을 약속한 제 남편의 귀여운 프러포즈였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지요”

김씨는 은행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더욱 높아지기를 소망한다. “어떤 은행이나 여성이 남성보다 직원 수 면에서 월등히 많지만, 지점장으로 승진하는 여성 선배님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여성 지점장이 나올 때마다 같은 여성으로서 자부심도 느끼고 그들이 지나온 길도 거울삼게 된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도 나온 마당에 그녀의 작은 꿈도 이뤄지길 빌어 본다.

이데일리 201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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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銀 김용술씨 27년만에 팀장급 "이젠 지점장 꿈꾼다"

"다른 지점 직원들도 들러보고 싶은 출장소를 만들겠습니다."

 20130110.jpg

10일 기업은행의 상반기 정기인사에서 청원경찰 출신으로 출장소장이 된 김용술 과장은 다가온 기회가 아직 믿기지 않는 듯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청원경찰로 입행해 2007년 행원이 된 그는 지난해 7월 과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반년 만에 팀장급 출장소장 자리에 올랐다. 보통 과장에서 출장소장급으로 승진하려면 8년6개월 정도 걸린다.

그가 기업은행 가족이 된 것은 1986년. 전투경찰로 군 복무를 한 뒤 경찰을 꿈꾸기도 했지만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은행에서 근무하는 것도 좋겠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은행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입행 이후에는 점차 은행 일에 관심을 두게 됐고 영업 현장에서 제대로 뛰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김 과장은 "스물다섯 살부터 제복을 입고 근무했다. 양복에 흰 와이셔츠 차림으로 멋있게 고객을 맞는 동갑내기 행원들이 참 부러웠다"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수차례 일반 행원으로 전환될 기회를 엿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입행 후 20여년이 2007년.

행내에서 모범직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일반 행원 명함을 거머쥐었다.

"첫 업무는 가계대출이었습니다. 지점에서 계장급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신입행원이나 마찬가지였죠."

46세의 나이로 전산 조작부터 다시 배워 행원이 된 그는 불철주야로 노력했다.

목이 쉬도록 고객에게 설명을 하며 방카슈랑스를 팔았고, 같은 지점 직원들의 도움을 얻어 고객과 은행원 역할을 하는 `롤 플레잉' 게임을 하며 고객 응대 능력을 길렀다.

이후에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섭외 가방'을 들고 뛰었다.

주변 학교와 유치원 등을 돌며 선생님과 학부모들을 섭외했고, 미래 고객인 아이들까지 기업은행 고객으로 만들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뛴 결과 김 과장은 10번이나 `신규고객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지난해 7월에는 과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에는 7천600좌의 신규 계좌를 유치했다.

이제 출장소장이 된 그는 또 하나의 꿈을 갖고 있다. 바로 은행원의 꽃이라 불리는 지점장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김 과장은 "은행에 들어오고 싶어도 입행조차 못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큰 기회를 얻었다"고 기뻐했다.

그는 이어 "정년이 4년 정도 남았다"며 "다른 지점 직원들도 들러보고 싶은 출장소를 만들어 퇴직 전에 꼭 지점장에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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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때부터 ‘은행원 맞춤 스펙’ 쌓았죠
일찍부터 목표 정해 놓고 어학 공부하고 학점 관리했죠
컴퓨터 관련 자격증뿐만 아니라 축구심판자격증도 따는 등 여러 분야 경험·실력 쌓았어요

20121123.jpg 금융권 취업은 예나 지금이나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경남은행은 2013년 상반기 신입행원 채용에서 60: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김무성 씨를 만나 준비 과정과 노하우를 들어봤다.

▲ 목표는 빨리 정할수록 좋다

경남대 무역학과에 입학한 김 씨는 1학년 때부터 은행원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평소 김 씨의 롤모델이었던 선배가 경남은행에 취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로의 방향을 정한 것이다.

김 씨는 “존경하던 선배라서 멋있어 보였던 것도 있고, 선배가 이야기해주는 은행원의 역할에 대해 들으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했다”며 “선배는 외환시장이 커지면서 은행에서도 무역 전공을 한 인재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길을 안내해 줬고, 내 목표와 맞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일찍이 진로를 정한 김 씨는 대학시절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고, 어학 공부와 자격증 준비, 면접 스터디 공부, 학점 관리도 착실히 해서 소위 ‘스펙’을 단단하게 쌓았다. 오후 10시 이전에는 도서관을 떠나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오전이나 주말을 활용해서는 봉사활동, 대외활동에 중점을 뒀다. 은행원이란 공부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김 씨는 “준비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멘토인 선배들을 만나고, 경남은행에서 하는 설명회에 꼭꼭 참가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 은행의 인재상에 자신을 맞춰라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은행에서 바라는 인재상에 자신을 맞추는 게 최우선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응시 자격 조건이다. 올해 경남은행 신입행원 모집 조건은 토익 700점에 학점은 B학점 이상이었다. 

김 씨는 대학의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 동안 필리핀 연수를 다녀오며 영어를 공부했고, 토익점수 870점을 받았다. 1학년 때부터 학점을 관리해 평점 4.37이라는 높은 점수로 졸업했다.

도움이 될 만한 자격증 공부도 했다. 컴퓨터 관련 자격증(사무자동화, 모스마스터)을 취득했고, 각종 봉사활동도 꾸준히 했다. 그뿐만 아니라 틈틈이 자신의 취미인 축구를 활용해 축구심판자격증도 취득, 경남은행장배 축구대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은행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합격에 가장 큰 도움이 된 청년 인턴사원에도 도전했다. 군대 제대 후 지난 6월부터 2개월간 본점 전략기획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은행 업무를 보고 익히고, 자신의 적성과 맞는지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 씨는 “인턴을 하면서 꿈이 더 구체화되고,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특기는 어필하고, 열정은 드러내라

“외환시장이 커지면서 관련 사업에 열정을 쏟고 싶다고 어필했고, 이것이 합격에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김 씨가 취업 준비를 하면서 내세운 것은 자신의 특기였다. 전공인 무역학을 은행의 외환시장 진출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이는 최근 외환시장을 확장하려는 은행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선배들의 조언과 금융권에 대한 꾸준한 관심 덕분이다.

김 씨는 “언론과 인터넷 등을 통해 경남은행에 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찾고 공부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팁은 인턴 근무 시절 자신의 열정을 남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인턴 활동을 시작하면서 블로그를 운영, 은행 인턴 생활과 은행에 대한 정보, 자신의 생각 등을 적으며 홍보인을 자처했다. 또 인턴이 끝나는 시점에 활동일지를 별도로 만들어서 제출하기도 했다. 본래 제출하는 게 아니었지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합격으로 이어졌으니 노력이 통한 셈이다.

김 씨는 “취업을 위한 기본은 착실한 준비겠지만, 자격에 대한 준비가 다 된 다음에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며 “또 은행 인턴제 등 관련 경험을 많이 쌓아서 적성과 맞는지도 알아보고 그 경험을 발판으로 기회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경남은행 인사 담당자의 취업 Tip

경남은행의 직원 채용은 서류 심사-인성·적성 검사-1차 면접-심층 면접 순서로 진행된다.

서류 심사에서는 학점과 토익, 자격증 등을 중심으로 1차 심사를 한다. 인성·적성 검사에서는 응시자의 인성과 적성이 은행 업무와 맞는지, 결격사유는 없는지를 체크한다. 1차 면접에서는 롤플레잉과 찬반토론, PT면접, 역량면접 등으로 인재를 가려낸다. 최종으로 임원진들이 심층면접을 통해 합격자를 결정한다.

원하는 인재상으로 high performer, creator, customer-oriented human, team player 네 가지를 꼽는다.

열정과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각자 분야에서 성과를 창출하고, 진취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블루오션을 개척해 나가고, 차별화된 서비스 능력을 통해 고객의 입장에서 항상 행동하고 감동을 실현하고, 밝고 긍정적이며 팀워크를 중시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열정과 정성을 가지고 준비한 인재에게 기회를 준다고 밝혔다.

경남은행 인사부 담당자는 “신입행원 모집 시 기본적으로 학점이나 영어, 자격증을 보긴 하지만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정말 은행을 목표로 하고 은행에 필요한 인재가 되기 위해 정성껏 준비했느냐는 부분”이라며 “따라서 은행 채용 시 금융자격증 보유 여부와 청년 인턴십 참여 여부 등에 가점을 준다”고 말했다.

또한 지방대학 학생이라면 채용에 더 유리하다.

경남은행의 경우 지역은행으로서 지방대생 인재를 적극 채용, 매년 85% 이상을 지방대학 출신으로 뽑는다.

경남신문 201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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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씨티은행 오영제 부장 "해방감과 도전의식 동시 만족"

2012102801.jpg
"모든 것에서 해방된 느낌입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되나요?(웃음) 알몸으로 햇볕을 쬐고, 알몸으로 바닷물에 뛰어드는 기분입니다."

한국씨티은행 오영제 부장의 말이다. 오 부장은 2년 전부터 '맨발 마라톤'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10회 국제평화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42.195km)완주도 성공했다. 맨발로 4시간 50분을 달려서 결승점에 들어왔다.

오 부장이 '맨발 마라톤'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하다. 계속 달리고 싶어서다. 그는 11년 전에 마라톤을 시작했다. 늘어난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마라톤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달릴 때의 상쾌한 기분과 완주 뒤의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이후 보스톤 마라톤 등 풀코스 마라톤만 30여 회 이상 참여했다. 거리가 100km가 넘는 울트라 마라톤에서도 15시간 이상을 달려 완주했다.

하지만 잦은 무릎 부상과 족저근막염(발뒤꿈치 통증 증후군)의 재발로 더는 무리였다. 어쩔 수 없이 수영으로 운동 종목을 바꿨지만 달리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 때 찾아낸 것이 맨발 마라톤이다. 부상 없이 달릴 수 있는 있는 방법으로 맨발 달리기가 주목 받고 있다는 사실을 해외 사이트를 통해 알아냈다. 한국에서는 관련 서적도 많지 않아 아마존에서 구입한 이론서를 직접 번역하면서 공부했다.

2012102802.jpg
처음에는 달리기는 커녕 100m를 걷지도 못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50년 이상을 한 번도 맨 땅에 발을 디뎌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m, 300m 매일 조금씩 거리를 늘렸다. 뛰다가 발이 아프면 신발을 신고 그리고 다시 맨발로 뛰기를 반복했다. 나중에는 직접 만든 발바닥 보호 신발을 신고 지리산 종주와 천진암울트라 100km 마라톤 완주를 했다. 며칠 전에는 맨발로 한라산을 등반했다.

"발바닥에는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신경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신발을 벗고 자연이 주는 느낌을 한 번이라도 온전히 느껴본 적이 있나요? 토양의 온도, 바닥의 기울기 등 말로 모두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자극들이 뇌로 전달됩니다."

그에게 '맨발 마라톤'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다. 더 먼 거리를 또 더 빨리 달리면서 매번 성취감을 느낀다. 맨발 마라톤을 하면서 그가 입은 부상은 두 번이었다. "유리조각과 나무 가지가 발바닥에 박힌 적이 있는데, 그냥 간단히 빼냈어요. 사람들이 맨발로 달리면 다치지 않냐고 하는데 발은 생각보다 단단합니다."

"맨발 마라톤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은 아직까지 분분합니다. 그래서 직접 경험한 후 맨발 마라톤의 좋은 점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가 맨발로 마라톤을 하는 또 다른 이유다. 맨발로 달린 후 무릎 부상과 족저근막염도 사라졌다. 머리도 맑아졌다. "세상에 못할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도전하세요. 그리고 성취하세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맨발 달리기에 관심이 있다면

오영제 부장은 맨발 달리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카페(http://cafe.naver.com/barefootrunning)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10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매주 토요일 남산에서 회원들과 맨발 달리기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카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머니투데이 201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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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4.jpg
변검·마술 등 ‘끼’로 문화마케팅 주도

기업은행이 후원하는 한 고객사의 행사장. 화려한 중국 의상에 형형색색의 가면을 쓴 공연자가 무대 중앙에서 춤을 춘다. 그가 손짓을 한번 할 때마다 얼굴에 씌워진 가면이 순식간에 바뀐다. 무대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관객들은 그의 가면이 눈깜빡할 사이에 바뀔 때마다 모두 탄성을 내지르고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이것은 바로 한국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중국 쓰촨지방의 전통 경극 '변검' 공연이다.

이 공연의 주인공은 바로 금융권에서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기업은행 본점 이동우 계장이다. 그는 기업은행의 수백명 직원 중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이 계장은 원래 청원경찰로 기업은행에 입사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열린 직원 장기자랑대회에서 펼친 변검 공연이 조준희 행장의 눈에 들어 개인고객부 직원으로 특채됐다. 그는 현재 어엿한 은행원이지만 계산기와 전표, 전산단말기를 두드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 계장의 주 업무는 기업은행이 고객 마케팅이나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개최하는 각종 행사 때마다 변검과 마술 공연을 하는 '공연 전문 스페셜리스트'다.

근무일수의 99%를 모두 공연장에서 보내고 있는 이 계장은 기업은행 내에서 조 행장 다음으로 스케줄이 많은 행원이라 불릴 정도다. 이 계장이 변검이라는 독특한 기예를 배우게 된 계기는 그의 어머니 덕분이다. 이 계장은 "태극권 사범이었던 어머니 덕분에 어려서부터 중국 무술을 익혔고 고등학교 때부터 프로 마술사로 활동하면서 관객과 호흡하는 공연을 내 천직으로 생각하게 됐다"며 "무술체육관의 사범님이 중국을 오가며 구해온 변검 복장과 도구들을 이용해 거의 독학으로 기예를 익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제대한 이후 마술 공연을 위한 도구들을 구입하기 위해 일자리가 필요했고 그때 마침 선택한 것이 기업은행의 청경 자리였다. 1년간 열심히 돈을 모아 마술 관련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릴 계획이었던 이 계장은 변검 실력 덕분에 은행원으로 뽑히는 행운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기업은행으로부터 이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공연 회사를 차리고 업계에 뛰어들게 되면 공연 자체도 중요하지만 공연계약을 따기 위한 영업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뺏겨야 한다. 그러나 기업은행에 소속돼 일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공연을 만드는 데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디서든 공연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업은행에서 이 자리를 제안했을 때 뛸 듯이 기뻤다"며 "제 공연을 보고 관객들이 환호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볼 때가 내 스스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 계장은 현재 마술과 변검뿐만 아니라 클럽 디제이들의 디제잉과 각종 악기연주, 연기 등 공연을 위해 필요한 것을 배우며 공연전문가로서 자신을 업그레이드해 나가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201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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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하는 차도 속으로 뛰어들어 쓰러져 있는 한 시민의 목숨을 구한 황용진 신한은행 금촌지점 청원경찰(청경)의 '의로운 사연'이 뒤늦게 알려져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 6월 11일 오전 10시께 황 청경은 고객을 맞이 하기 위해 객장을 분주히 돌아 다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출입구를 주시하던 그는 내리막 길을 질주하던 승용차가 50대 중년 남성을 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50대 중년 남성은 승용차와 추돌 하자마자 공중으로 날아 오르더니 몇바퀴 회전 후 도로 한 가운데로 철퍼덕 떨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대형사고로 주변엔 '웅성 웅성'거리는 사람들로 꽉 찼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선뜻 도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 남자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사고 지점이 언덕 바로 아래 내리막 도로인지라 갑자기 다른 차량이 질주하면 꼼짝달싹 없이 큰 낭패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찰나 은행문을 박차고 뛰어 나온 한 청경이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민첩하게 차도로 몸을 던졌다.

청경은 쓰러진 남성에게 응급조치를 한 뒤 10여 미터 뒤에 안전판을 설치하는 등 2차 추돌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청경이 혈혈단신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 순간에도 40~50명이 되는 사람들은 길가에 서서 "어떡하지 어떡해~!" "저러다 큰 일 나겠는데…" 등의 감탄사와 "찰칵 찰칵" 핸드폰 사진촬영만 해댔다.

언덕을 넘은 차량들은 경적을 울리며 쏜살같이 청경과 쓰러져 있는 남성 바로 옆으로 지나쳐갔다. 황 청경은 아찔한 광경에 저절로 눈이 감겼다고 한다.

20여분의 시간이 지났지만 응급차는 오질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마침 그날 같은 시간에 관할 지역에서 다른 대형사고가 나서 모든 응급차들이 그쪽으로 출동, 다른 지역에서 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사고발생 25분께다.

일산 동국대병원으로 이송된 그 남성은 의식을 잃은 상태라 중환자실로 직행, 다섯 번의 뇌수술을 한 후에야 위급한 상황을 넘길 수 있었다. 황 청경의 민첩하고 용기있는 행동이 그 50대 중년 남성의 목숨을 구한 것.

사고발생 후 십여일이 지나갈 무렵 신한은행 금촌지점에 그 중년 남성의 아들과 며느리가 찾아와 황 청경에게 꾸벅 절을 하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연거푸 되뇌며 울먹였다.

그날 은행 업무를 보던 다른 손님들도 이 광경을 지켜보고는 황 청경을 격려하는 등 훈훈한 광경이 펼쳐졌다.

황 청경은 "상황이 너무 위급해 (그 분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차도속으로 뛰어 들었을 뿐"이라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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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덤 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더 아름답게 느껴짐은 왜 일까.

역설적이지만 그의 무덤덤한 표정속에서 삭막하지만 온정이 살아 있는 우리 사회의 한 켠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따뜻한 사회'란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내 가족처럼 여기는 그런 마음이 아닐까.

이 같은 맥락에서 황 청경은 이 시대의 따뜻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의인'이라 할 만 하다.

황 씨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온정의 손을 내밀면 소중한 생명도 구할 수 있다"며 "조금씩 그렇게 손을 내밀다 보면 이 사회가 한가위 보름달 마냥 밝고 풍성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황용진 청원경찰과의 일문일답.

▶ 질주하는 차도 속으로 뛰어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도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 분을 살려야 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물론 아내가 그 모습을 봤다면 싫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쓰러진 사람이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도로에 쓰러져 있는 중년 남성과 같이 앉아 있는데 차가 엄청 많이 지나갔다. 그때서야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 사고 현장에 40~50여명이 있었는데 동영상 등 사진촬영만 할뿐 나서는 사람이 없어 화가 치밀기도 했다.

▶ 현재 사고 남성의 상태는

-다섯 번의 뇌수술을 하고 의식을 회복했다. 그러나 수술 후유증으로 아직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빨리 완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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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색적인 경력이 있다고

-하사관 특전사(30기)로 5여단에서 복무했다. 청와대 경호처 파견업무가 주였는데 대통령이 행사 등에 참석할 때 한달전부터 주변 지역 폭발물 점검을 비롯해 저격수 배치, 경찰서 실탄 현황 파악 등의 업무를 맡았다.

하사관 제대 후에는 10년간 대한경호협회 소속으로 파주 금강산랜드에서 경호업무를 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회사가 휘청거리며 정리해고 당했다. 또 파주시 자치신문 'GNN'에서 경찰서 담당 기자생활을 3년 정도 하기도 했다.

▶ 청경 일 하면서 힘든 점은

-은행업무를 모르는 것 같아 다가가 관련 업무를 안내하면 가끔씩 고객이 무시하는 언행을 할 때가 있다. 따뜻하게 안내 하는 진심을 몰라 주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곤한다.

▶ 퇴근 후에는

-아침 8시에 출근해서 6시쯤 퇴근하면 바로 어린이 집에 가서 33개월된 꼬맹이를 데리고 온다. 집에가서 목욕을 시키고 빨래를 하고, 저녁을 먹고 놀아주다 보면 10시가 된다. 그러면 가게 일이 끝난 아내를 데리러 차를 끌고 마중을 나간다. 사고 당시 그날도 퇴근 후 어린이 집에 꼬맹이를 데리러 가야 했는데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일산 동국대병원에 들러 환자의 상태를 확인 한 후에야 마음이 놓였다.

▶ 신한은행 본사에서 포상은 없었나

-포상 받을 만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웃음).

▶ 올해 신한은행에서 '따뜻한 금융'을 캐치프레이즈로 걸고 있다. 일선 창구 모습은

-은행원들의 말투나 행동 등이 고객에게 더 친절하게 다가서려는 것 같다. 고객 반응이 좋다.

▶청경이 생각하는 따뜻한 금융이란

-고객을 내 가족처럼 여기는 마음, 그 속에 모든 게 포함돼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신념이 있다면

-'사나이 외길'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태어나서 한번 살고 가는 인생, 무슨 일을 하든 의미 있게 살고 싶다. 직장에서는 고객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가정에서는 좋은 남편, 자상한 아버지로 그렇게 말이다.

■ He is…

1979년 4월25일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진주 LG연암공대를 졸업했다. 대한경호협회 소속으로 10년간 경호업무를 하다 정리해고, 2009년부터 신한은행 금촌지점에서 청경 생활을 하고 있다. 33개월 된 아들과 아내가 있다. 부모님은 진주에서 올라와 파주 금촌시내에서 치킨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다.

황용진 신한은행 금촌지점 청경은 "진정한 선진국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일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201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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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리은행 단문 계장입니다."

거침없는 한국말 솜씨에 놀라 "정말 한국인 아니예요?"라는 질문이 불쑥 튀어나왔다. 177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한 목소리, 자신감 있는 말투는 보는 사람까지 기분 좋게 만들었다.

단문 계장(회기동 지점)은 중국인이다. 옛 당나라의 수도였던 중국 시안(西安)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시안의 옛 이름은 '장안(長安)'으로 진시황제와 양귀비가 살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중국 5000년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시안을 방문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하문명의 발상지로 근대까지 인류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도시다.

그런 곳을 홀로 떠나 한국에서 '은행원'이 된 이유가 뭘까. 그녀는 우리은행 뿐 아니라 은행권을 통틀어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정규채용에 합격했다. 한국인들과 똑같이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다.

쉽게 이룬 것은 아니다. 끝없는 두드림의 결과였다. 대학원 재학 시절 '우리은행 글로벌 인턴십'에 참여하면서 우리은행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한 달 동안 우리은행 중국법인에서 일하면서 '꼭 입사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가족 같은 기업문화가 좋았어요. 인턴으로 있으면서 한국 최고의 은행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도 생겼고요."

하지만 당시 우리은행은 외국인을 채용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대학원을 졸업한 뒤 중국으로 돌아갔다. 중국 한국영사관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우리은행이 2009년 하반기부터 외국인 지원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사관 근무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망설임 없이 지원서를 냈다. 한국과 중국을 오고가며 면접만 세 번을 본 끝에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그녀는 중국인이지만 '국제부' 등 특수부서가 아니라 다른 동기들과 똑같이 지점으로 발령 받았다.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가 고객들을 잘 응대할 수 있을지 은행 내부적으로도 반심 반의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그녀는 서글서글한 미소와 싹싹한 태도로 단골고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단문 계장은 어쩜 그렇게 중국말을 잘해?" 지점을 방문한 고객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한국인이 중국말을 잘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고객 응대에 능숙하다. 지점 고객의 30%를 차지하는 중국 유학생 상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녀가 온 이후로 인근 경쟁은행을 거래하던 중국 유학생들도 우리은행을 찾고 있다.

"남들보다 딱 3배만 더 노력하면 됩니다." 한국 온 지 7년도 되지 않아 국내 최고의 은행에 입사, 그리고 은행원으로 멋지게 살아가는 비결에 대한 답이다. "다른 사람들이 1시간 노력할 때, 3시간 노력하면 그만큼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잘하고 싶으면 3시간 이상 하면 되죠." (웃음)

그녀의 최종 꿈은 우리은행의 중국시장 공략에 기여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죠. 그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경험을 쌓을 겁니다." 최근에는 파생상품과 외환 공부에 빠져있다. 첫 외국인 행원에 이어 은행 최초 여자 중국 현지법인장이 탄생할 날을 그려본다.

▶ 단문 계장은 1983년생 중국의 시안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대학교까지 마쳤으며, 한양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금융에 관심이 많아 대학교 때는 응용수학을, 대학원에서는 통계학을 전공했다. 2010년 우리은행 공채로 입사해 현재 서울 우리은행 (회기동 지점 소속)경희대학교 출장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난 6월 한국인과 결혼했다. 

머니투데이 201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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