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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이 말하는 ‘2016 은행원’] “후배가 은행원 한다고 하면 말릴래요” 

4대 시중은행원 8명 심층 인터뷰 재구성 … 급여·복지 수준 높지만 실적 압박, 미래 불투명 

신입사원 입사 경쟁률 100대 1, 신입직원 초봉 5000만원 안팎, 아이 하나 당 2년 육아휴직 보장, 자녀 대학학자금·자기계발비 지급, 부모님 의료비 지원. 화이트칼라의 아이콘, 은행원 하면 떠오르는 건 고연봉·복지혜택·안정성이다. 동시에 은행원은 20년 후 인공지능(AI) 로봇이 대체할 확률이 96.8%인 직업이기도 하다(옥스퍼드·딜로이트 ‘미래직업 보고서’). 은행을 둘러싼 환경은 이미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거슬러 갈 필요도 없다. 몇 년 새 인터넷·모바일뱅킹이 활성화되면서 문 닫는 은행 영업점이 갈수록 늘고 있다. 희망퇴직을 통한 인력 구조조정은 상시화됐다. 더구나 인터넷전문은행의 출범까지 코앞에 닥쳤다. 변화의 칼바람이 예고되는 대한민국 은행원의 삶을 들여다봤다.

현직 은행원들이 말하는 은행원은 어떤 직업일까. 4대 시중은행(KEB하나·KB국민·우리·신한은행)에서 근무 중인 직원 8명(각 은행별 2명)을 심층 인터뷰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육아휴직 중인 지점 행원과 본점에서 일하는 차장, 입사 20년이 넘은 지점장까지 성별(남 5, 여 3)과 근무처(지점·본점 각각 4)가 제각각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 비슷했다. ‘은행에서 누가 인터뷰했는지 알면 절대 안 된다’는 요청에 따라 이들의 이름 대신 가명의 두 인물을 내세워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다. 은행 지점에서 일하는 5년차 대리 김은행씨(여)와 본점에서 근무 중인 15년차 차장 나안정씨다.

5년차 김은행 대리 | “국책은행·금융공기업이 더 낫지 않을까요”

장래 희망이 은행원이었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대부분 은행원이라는 꿈이 없었던 사람인 거 같아요. 저도 그랬죠. 취업할 때가 돼서 보니까 연봉이 대기업 수준이고, 여자가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이고. 그래서 지원했어요. 은행과 함께 보험·증권사도 합격했지요. 그래서 부모님과 상의했더니 “당연히 은행”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연봉은 다른 데가 더 높았는데. 어른들은 은행이 안정적이라서 좋아하세요. 그게 은행원이란 직업의 장점이라면 장점이죠.

일단 입행하면 무조건 지점으로 배치돼요. 저는 지점 일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어요. 은행이 4시에 문 닫으면 퇴근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와서 보니까 보통 7시 30분에 출근해서 퇴근은 평균적으로 저녁 8시에나 하더라고요. 물론 지점마다 다르긴 하지만요. 4시에 손님들 가시고 나서부터 마감을 하는데, 일반상담창구는 8시 이전에 퇴근하긴 하지만 대출계는 더 늦게 퇴근해요. 대졸행원 중 남자들은 주로 대출 창구로 많이 가니까 퇴근이 좀 더 늦죠.

업무 강도야 다른 대기업을 갔어도 마찬가지였겠죠. 사실 지점 업무라는 게 일반 대기업에서는 아르바이트생이 할 만한 단순 업무까지 은행원이 다 해야 하는 구조이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과연 이 정도 급여를 받는 좋은 스펙의 직원들이 할 만한 일인가 하는 회의가 드는 게 사실이에요. 정작 힘들 게 하는 건 이른바 ‘진상 손님’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은행은 무조건 고객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강조하잖아요. 그런 진상 손님들 상담하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몰라요. 다른 서비스 직종도 그렇겠지만 ‘떼법’이 통하는 사회이다 보니 무조건 은행에 와서 우기는 블랙컨슈머들이 한 둘이 아니에요. 일부 직원들은 진상 손님 때문에 우는 경우도 있다니까요.

또 다른 스트레스요인은 바로 실적 압박이에요. 3월 중순에 출시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아시죠? 1인당 100좌 넘게 할당이 떨어졌어요. 계좌이동제도 겹쳐서 제가 입행한 후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실적 압박이 심한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2013년 주택청약종합저축 실적 할당이 떨어졌던 그때보다 더 심하다니까요. 물론 이해는 하죠. 은행들이 이제 예대 마진으로는 수익이 안 나니까 비이자수익을 올리는 게 점점 더 중요해지거든요. 하지만 저희 입장에선 나름대로 금융전문가가 되겠다고 은행에 들어왔는데, 고객이 이 상품을 가입하면 안 될 것 같은데도 실적 압박 때문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 닥치곤 해요.

‘진상 손님’ 상대 스트레스 심해

사실 저희 동기들 보면 1만원씩 가입하기로 하고 다들 ISA 50좌 정도를 이미 확보했거든요. 그런데 그걸 일부러 조금씩 가입 시키고 있어요. 금융감독원이 ‘불완전판매를 단속한다’고 엄포를 놓으니까 눈치를 보는 거죠. 어차피 100좌 할당은 상반기 평가에 들어가는 거니까 6월까지만 채우면 되거든요. 요즘엔 심지어 ‘금감원이 ISA를 가장 많이 판매한 은행을 검사할 수 있다. 1등은 하면 안 된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어요. 정말 코미디 같은 상황이죠.

어차피 금감원이 결정해주는 대로 하면 되니까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요. 도대체 금감원이 시키는 대로 하려면 왜 이렇게 많은 은행이 필요할까. 그냥 한국은행의 지점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닐까 라고요. 솔직히 고객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은행을 브랜드와 상품 비교해 보고 가나요? 보통은 집 가까이에 있는 은행, 대학 안에 있는 은행, 월급통장 들어오는 은행을 찾아갈 뿐이지요.

문제 많은 호봉제 … 저성과자 솎아내야

호봉제도 문제가 많아요. 은행에 20년차인 대리, 이런 사람들 보면 일 안하고 앉아서 놀고 있으면서도 연봉을 1억원씩 받는다니까요. 그런 사람들 보면 일하고 싶은 의욕이 싹 사라져요. ‘저 사람이 일을 안 해서 옆에 있는 내가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은행의 성장을 위해서는 월급 축내는 그런 저성과자들을 솎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후배들이 은행에 입사원서 쓴다고 하면 말릴 거에요. 요즘엔 다들 급여 수준이 적당하면서 업무량도 너무 많지 않은 곳을 선호하잖아요. 시중은행은 그런 곳은 아닌 듯해요. 국책 은행이나 금융공기업이 더 낫지 않을까요. 직장에 불만이 그렇게 많으면 그만 두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처음 입사했을 땐 조금 다니다가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죠.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가급적 오래, 가능하다면 정년까지 다니려고요.

사실 업무 스트레스가 있지만 여자로서 직장생활을 하기에 이 정도 직장은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저는 앞으로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야 하는데. 은행은 육아휴직을 2년까지 보장하고 육아휴직을 다녀왔다고 해서 차별하거나 하지 않아요. 거의 모든 여직원들이 아기를 낳은 뒤 2년을 꽉 채워서 쉬는 분위기이거든요. 또 교육이나 연수 기회도 많고요. 노력만 하면 자기계발을 할 수 있지요.

지점에서 고객을 만나는 일에서 보람을 느낄 때도 있어요. 손님에게 내가 도움이 되는 상담을 해주면 거기서 느끼는 성취감도 있고요. 물론 언젠가는 본점에서 일하는 게 로망이에요. 본점은 더 업무량이 많고 퇴근이 늦다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개인소매금융 분야는 점점 돈이 안 돼 축소될 테니 은행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기업금융이나 전략·기획 쪽으로 가는 게 맞는다고 봐요. 그리고 무엇보다 진상 손님을 상대할 일은 없으니까요.

15년차 나안정 차장 | “20년 후에도 은행원이란 직업이 있을까요”


은행원이요? 객관적으로 좋은 직장인 게 사실입니다. 잘 나가는 수출 대기업처럼 성과급을 왕창 주거나 하진 않지만 급여 수준이 괜찮고요. 직무도 그렇게까지 험한 일은 아니고요. 구조조정을 하긴 하지만 노조가 워낙 세서 일반 대기업과 비교하면 그렇게까지 무지막지하게는 못해요. 자녀 대학 학자금, 자기계발 지원금 같은 소소한 복지혜택도 쏠쏠합니다.

물론 예전 선배 세대 때와 비교하면 좀 힘들어지기도 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 큰 은행 지점엔 100명씩 일하던 시절도 있었다죠. 제가 처음 입행했던 2000년대 초반 큰 지점엔 직원이 30명 정도였습니다. 그때도 지점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었죠. 그런데 요즘은 평균 10명 남짓 밖에 안 됩니다. 십수년 새에 은행 업무가 많이 자동화되면서 지점 인력을 확 줄였지요. 지점을 운영하려면 기본 인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거든요. 업무량이 전보다 크게 늘어난 건 사실입니다.

실적 압박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스마트뱅킹이나 급여통장처럼 은행이 필요해서 실적 드라이브를 거는 상품도 있죠. 하지만 재형저축이나 ISA처럼 정책성 상품도 안 할 순 없어요. 우리가 안 하면 남이 다 가져갈 테니 열심히 팔아야 합니다. 얼마 전 지점에서 일하는 후배가 전화해서 “ISA 때문에 미치겠다”고 하소연하더군요.

은행원들이 성과평가(KPI)에 목숨 거는 건 아실 겁니다. 본점에서 일하면서 은행 지점에서 가장 많이 받는 전화가 “이거 하면 KPI에 들어가나요”일 정도입니다. 몇 년 전부터 금융당국의 지침에 따라 은행 직원과 직원 가족에게 판매한 건 실적 집계에서 빼도록 했어요. 보통 복지혜택 때문에 배우자와 자녀는 물론 부모님과 장인·장모님까지 가족으로 등록하는데, 이들이 가입한 건 실적 인정이 안 되는 거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실적 채우기만 더 힘들어졌습니다. 오죽하면 저희들 사이에 이런 말이 나오겠습니까. “애를 하나 더 낳으면 생큐다. 가족 등록하기 전에 실적 올리자.”

사실 은행업은 어떻게 보면 정부의 정책적인 테두리 안에서 정부가 하라는 대로 시키는 것만 하면 됩니다. 그게 가장 안전하죠. 은행의 윗사람들도 정부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이냐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어차피 은행원은 호봉제이고 가만히 있어도 연봉은 올라가니까요. 일을 잘한다고 해서 더 받는 것도 없는데 괜히 일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무 일도 안 해서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게 은행원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겁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굳이 하려고 할 필요도 없는 구조라 할 수 있어요.

스타플레이어? 그런 건 필요 없어

은행권 안에서 이직이 거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은행원은 공채 출신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한은행 다니다 KB국민은행으로, KEB하나은행 다니다 우리은행으로 이직했다는 사람 본 적 없을 겁니다. 어차피 이 은행이나 저 은행이나 똑같은데 굳이 옮길 이유가 없지요. 은행원은 전문성보다는 조직 내에서 얼마나 네트워크를 잘 쌓아놨느냐가 중요하니까요. 다른 은행으로 옮기면 기껏 쌓아놓은 네트워크가 사라지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은행 입장에서도 내부 직원들이 계속 올라오는데 경력을 채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워낙 충성도를 중시하는 보수적인 조직이기도 하고요. 은행 업무는 어차피 다 똑같고 은행원 중 누구를 갖다놔도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스타플레이어, 그런 건 별로 필요 없습니다. 뽑을 때도 둥글둥글하고 순해서 조직에 잘 적응하는 사람 위주로 선발하고요. 대신 그 때문인지 은행원들이 대체로 순하고 착해요. 그건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럼 최근에 정부가 주장하는 성과주의를 도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글쎄요. 성과에 따라 보상한다는 원칙 자체는 괜찮은 방향입니다. 취지 자체엔 공감하는 은행원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의 은행들이 성과주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긴 했습니까? 외국의 은행들은 소매금융·투자금융·자산관리 같은 직군을 확실히 나눠서 직군 별로 채용과 평가, 보상을 별도로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은행은 안 그렇지요. 고학력·고임금 대졸행원을 뽑아서 창구 텔러와 별 차이 없는 일을 시키니까요. 사실상 기준 자체가 없는데 성과를 무엇으로 측정한다는 건가요.

은행 업무의 특성상 개인평가를 하기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예컨대 지점의 창구 여직원 2명의 성과를 평가한다고 합시다. 한 직원은 자기 실적만 열심히 챙기고, 다른 직원은 고객 민원을 열심히 처리하느라 자기 실적은 잘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더 조직엔 도움이 될까요. 지금도 정성평가의 비중이 크다 보니 상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런 점이 더 심화될 거고요.

저는 오래 은행을 다니는 게 목표입니다. 얼마 전에 은행에서 새로 만드는 인터넷은행으로 갈 사람을 모집하는 공고를 냈더라고요. 조건도 괜찮고 새로운 일도 재미있을 것 같아 고민을 하다가 아내와 상의했죠. 그러자 아내는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더군요. “딴 생각하지 말고 일이나 해.” 이제 저도 나이가 있으니까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가 생기지 않더라고요. 요즘엔 임금피크제 적용되는 55세까지 다니면서 명퇴금을 받고 지점장으로 그만 두는 게 대다수 은행원들의 희망사항일 겁니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동기들끼리 “퇴직 전에 지점장은 한번 해봐야 할 텐데”라는 얘기를 합니다. 은행 수익은 점점 떨어지고, 지점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제가 55세가 될 쯤엔 지점장 한번 하기가 임원 승진 못지 않게 어려워질지 모릅니다. 은행원이란 직업을 둘러싼 환경은 지금보다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진 않을 듯합니다.

그래도 오래 다니는 게 목표

은행원이 내 아들 딸에게 추천할 만한 직업이냐고요? 그건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앞으로 한 5년쯤은 은행이 좋은 직장일 겁니다. 하지만 20년 후엔 은행이 어떻게 변할지, 은행원이라는 직종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어느 업종이나 거품이 빠지고 있고 은행도 예외는 아니죠. 문제는 그 속도가 얼마나 가파를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핀테크(Fintech) 시대에 과연 은행과 은행원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2016년 4월 25일 중앙시사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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