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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재취업 20% 턱걸이… 추심업무 종사 최다

1998년 6월29일. 유사 이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실업 한파가 직장인들을 덮쳤다. 그 중심부엔 금융기관 종사자들이 있었다. 9,841명의 은행원들이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이들이 다니던 경기 대동 동남 동화 충청 등 5개 은행이 정부의 결정으로 문을 닫은 것이다.
당시 정리방식은 그때까지 일반적이던 ‘인수ㆍ합병(M&A)’이 아니라 일반인에게 생소한 ‘자산ㆍ부채 이전(P&A)’이었다. 인수은행에 자산과 부채만 넘기면 그만이었을 뿐, 고용승계 의무는 전혀 없었다. 업무 인수인계를 위한 극소수 인원을 제외하고 대다수 직원이 직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퇴출’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쓰러졌지만, 이들의 집단 실직은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칼바람’의 상징이었다. 외환위기 10년째를 맞은 지금, 이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삶의 고단함은 인연마저 끊었다

퇴출 직원들에게 외환위기의 경험은 두 번 다시 생각하기 싫은 악몽일 뿐이다. 해서 대부분 옛 동료들의 근황은 물론, 연락처마저 잊고 지낸다. ‘5개 은행연합회’(www.5bank.or.kr)라는 이름의 자구단체가 인터넷 상에 남아있을 뿐, 실질적인 활동이 끊긴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홈페이지에는 간간히 옛 동료들의 경ㆍ조사와 개업소식, 연락처를 수소문하는 글들만 올라오고 있다. 연합회 관계자는 “아픈 기억을 되살리기 싫어서인지 소규모 친목모임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부고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본인들의 죽음이다.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은행별로 대략 5~10명이 세상을 등졌다. 상고를 졸업하고 충청은행에 들어왔던 A씨. 혈기 왕성한 20대 후반에 직장을 잃은 뒤 야간대학을 다니며 사채업을 시작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2004년 여름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빚을 견디다 못해 결혼 3개월 만에 임신 중인 부인을 뒤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충청은행을 그만둔 B씨는 실직 3개월 후 고향 대전을 떠났다. 자신을 버린 직장이 있던 도시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 양평에 식당을 열기 위해 예금과 보험까지 모두 해약했다. 그런데 개업 간판을 달던 중 난데없이 달려든 무면허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졌다. 보험금조차 챙기지 못한 허망한 죽음이었다. 동남은행 차장 출신인 이모씨는 99년 7월 캐나다 취업이민을 준비하던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인도네시아의 계약직 일자리를 오가며 과로한 탓이었다.

3분의 2가 사무실에서 거리로 내몰려

연합회가 퇴출 1년3개월 후인 99년 10월 옛 동료들의 직업을 조사한 결과, 자신의 전문분야와 유사한 직종에 근무하는 비율은 30%를 겨우 웃도는 정도였다. 인수은행에 계약직 등으로 고용된 사람이 2,816명(28.6%), 성업공사(현 자산관리공사) 임시 계약직이 510명(5.18%)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6,515명(66.2%)은 새 직업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가장 최근인 2004년 조사에선 전체 2,263명 가운데 계약직이 873명(38.6%)으로 가장 많았고, 정규직은 487명(21.5%)에 불과했다. 이밖에 실업자가 712명(31.5%), 자영업자 191명(8.4%) 등이었다. 연합회 측이 알음알음 파악하고 있는 이들의 현재 직업은 그야말로 은행업무를 뺀 거의 모든 직종을 망라한다. 단, 사무실이 아닌 발품을 파는 일이 대부분이다.

한 관계자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신용정보회사에서 남의 빚 받아내는 추심 업무를 가장 많이 한다”며 “그 밖에 새우젓 가게, 포크레인 기사, 생수 배달, 택시 운전 등 셀 수도 없다”고 전했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다단계업체 제이유(JU)에 수천 만원씩 투자했다 날렸다는 동료들의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개중에는 실직 전보다 형편이 더 나아진 사람도 있다. 드물긴 하지만, 은행 간부 경력으로 증권사에 몸담았다 2000년 벤처 바람을 타고 큰 돈을 번 뒤 퇴직해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이 전형적이다. 

퇴직자 지원법 개정안에 실낱 희망

이들은 그동안 출신 은행이나 5개 은행 공동명의로 국가 상대 손해배상, 해고무효확인 등 여러 건의 소송을 냈지만 모두 패소했다. 충청은행 퇴직 직원들의 해고무효확인 소송에는 당시 변호사였던 이용훈 대법원장도 대리인으로 참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법원이 퇴출 은행원의 손을 들어줄 경우 생길 사회적 파장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 것 같다는 게 연합회 측의 분석이다.

2004년 3월에는 이들을 위한 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름하여 ‘금융 구조조정으로 정리된 금융기관 직원의 생활안정 지원에 관한 법률’이다. 야당 의원들이 발의해 퇴출 5개 은행원들의 금융기관 재취업을 지원하려는 취지로 우여곡절 끝에 제정됐으나 법 통과 후 단 1명도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다. 퇴직자들이 당초 요구했던 현금보상 항목은 법 제정 단계에서 삭제됐고, ‘지원할 수 있다’는 식으로 법 자체에 강제성이 없어 해당 금융기관들이 하나같이 외면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연합회는 2006년 말 시한인 이 법안을 2008년까지 연장하기 위한 개정안 처리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연합회 관계자는 “일단 시한을 연장한 뒤 대선 정국을 활용해 법안에 지원의무를 명시하는 것이 마지막 실낱 같은 희망”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구조조정 아직도 진행 중

97년 말 33개에 이르던 국내 은행은 현재 18개로 절반 가량 줄어들었다. 5개가 퇴출되고 5개가 인수ㆍ합병되는 등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환란의 주범으로 몰린 종합금융사들의 처지는 더욱 암담하다. 당시 30개의 종금사 중 지금까지 2개만 살아 남았다. 금융감독위에 따르면 97년 말 2,069개에 달하던 종금사 신협 등 비은행기관은 불과 4년 새 500개 이상 급감했다.

금융업계는 올해 또 한번의 빅뱅을 맞는다. 올 상반기 자본시장통합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전국의 금융기관들이 ‘은행’ ‘보험’ ‘금융투자회사’ 등 크게 세 분야로 재편되기 때문이다. 중소 금융기관들은 벌써부터 대형사와의 합병을 위해 활발한 물밑 접촉을 벌이고 있다. 금융기관 종사자들은 다시 한번 ‘살아남은 자’와 ‘떠나는 자’의 갈림길에 섰다.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금융권 구조조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일보 2006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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